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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립교환] 조예상(서울대/서울대 대학원) 선배의 후배와 공유하고싶은 교환학생 준비과정과 후기

  • 작성자 : 관리자
  • 조회수 : 19363


교환학생 체험 수기

 

조예상

 

1. 교환학생 지원 동기 및 참가 결정

교환학생에 지원하게 된 계기는 작은 우연으로부터 시작됐다. 아버지께서 신문을 읽으시던 중 교환학생에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게 되셨고, 아버지와 동생이 교환학생 프로그램에 참여해보라고 강력하게 권하시던 것이 그 시작이었다.  당시에는 중학교 3학년~고등학교 2학년이라는 중요한 시기에 1년 동안 다른 나라에 방문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들었고, 충분치 못한 영어 실력으로 인해 미국에서 잘 살 수 있을지 걱정되었기 때문에 교환학생에 지원한다는 것에 꽤나 망설여졌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가족들의 성화에 떠밀려 어쩔 수 없이 교환학생에 지원하게 되었다.

등 떠밀려 준비한 교환학생 준비과정이지만 생각보다 영어시험의 난이도가 높지 않아 준비하는 데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또한 미국인의 가정에서 1년 동안 생활할 수 있다는 것, 미국의 공립학교에서 미국학생들과 함께 생활을 할 수 있다는 점은 결코 다른 프로그램을 통해서는 얻을 수 없는 절호의 기회라는 점을 알게 되면서 내심 기대감이 생기기도 했다. 또한 다양한 장학혜택을 부여한다는 점이 무척 매력적으로 느껴져 본격적으로 교환학생 지원하는 과정에 매진하게 되었고 이내 합격할 수 있는 수준의 영어성적을 거두게 되었다.

 

2. 교환학생 준비과정: 국내학교 내신관리 및 영어에 대한 준비

한국에서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학생들의 대부분이 그러하듯이, 고등학교 1학년에 진학해서 좋은 내신 성적을 거두기는 어려웠다. 중학교를 재학하던 때에는 사교육을 별도로 받지 않아도 최상위권을 유지하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 않았는데, 고등학교에 입학한 이후에는 사교육에 의존하지 않고서는 내신시험과 모의고사를 함께 준비하는 것이 버겁게 느껴졌었다. 특히 영어와 수학에서 어려움이 많아 교환학생으로 출국하기 전에는 영어와 수학 내신 시험을 준비하는 데에 많은 시간을 투여했다. 내신공부하는 데에도 무척 버거운 고등학교 1학년 1학기를 보냈기 때문에 미국으로 출국하기 전까지도 영어 회화와 듣기에 대한 준비는 거의 하지 못한 채 비행기에 몸을 맡길 수 밖에 없었다.

 

3. 교환학생 미국 현지생활

- 학교생활 및 홈스테이 생활에서 가장 좋았던 기억 & 주의해야 할 점

미국에서 생활하면서 가장 좋았던 기억을 떠올리면, 잘하지 못해도 노력하는 모습에 박수를 쳐주는 점이라고 대답하고 싶다. 한국에서 평생 살아왔던 대부분의 학생들이 그러하듯이 나 역시 영어를 듣고 말하는 데에 어려움이 많았다. 그런데 내가 영어를 그렇게 잘하지 못하더라도 더듬더듬 말하는 나의 의도가 무엇인지 이해하려고 노력해주고 여유롭게 들어주던 친구들과 호스트 가족이 지금도 고맙고 감사하다. 시간이 약이라고 조금씩 말하기가 늘어가는 모습에 박수를 쳐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호스트 부모님과 학교 친구들의 모습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반면 주의해야 할 점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문화적인 차이에 대해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 한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한국에서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외국인들에게는 낯설고 이상하게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에 동일한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통해 독일에서 온 여학생과 같은 집에서 지내게 되었는데, 아주 사소한 문제(아마도 설거지를 어떻게 해야 하느냐로 다퉜던 것 같다.)로 말다툼이 시작되었다.  나와 관계가 서먹하게 된 이후에 그 여학생은 한참 고민하다가 결국 다른 집으로 옮겨 교환학생 생활을 하게 되었다. 작은 문화적인 차이로 다른 교환학생 뿐 아니라 호스트 패밀리와도 갈등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을 유의하며 생활하는 것이 필요하다.

 

- 현지 친구들과의 관계 및 학교 성적관리

한국인이 거의 없는 공립고등학교에 다닐 수 있다는 것이 본 교환학생 프로그램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동양에서 온 학생들을 거의 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현지 친구들도 나의 존재를 무척 신기하게 생각하곤 했었다. 물론 은근 슬쩍 나를 무시하거나 차별적인 시선을 보이는 경우가 없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오히려 그런 시선을 이용해서 현지 친구들과 친해지려고 노력했다. 예를 들면 한국에서 왔다고 말하는 나에게 북한에서 왔냐고 놀리는 친구에게 화를 내며 대응하기 보다는, 북한 말투를 따라하는 것을 보여주며 농담을 건내는 식으로 반응하며 그 친구와 친분을 쌓는 전략을 취했다.

한국에서 공부하는 것에 비하면, 학교 성적관리에 대한 부담은 높지 않았다. 그렇지만 학교 성적관리에 소홀히 하지 않으면 좋겠다는 조언을 남기고 싶다. 학교에서 공부한 내용이 고스란히 나의 실력이 되기 때문이다. 나에게 가장 어려운 과목은 American History였는데, 교과서도 두껍고 어려웠을 뿐 아니라 미국 역사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던 나에게는 넘을 수 없는 산맥처럼 보였다. 매일 1~2시간씩 영어사전을 찾아가며 American History를 독파해나가다 보니 나도 모르게 영어 독해실력이 증진되어 있었고, 이는 한국에서 영어 공부하는 데에 귀중한 자양분이 되었다.

추가적으로 한국에서 수학이나 과학을 공부하고 간 한국인 학생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점이 있다면 상급 이공계열 과목에 도전하라는 것이다. 한국에서 수학이나 과학을 충분히 공부했다면 미국 학생들에 비해 분명히 수학이나 과학에서는 한단계 앞서나가 있다고 자신있게 말하고 싶다. 게다가 수학이나 과학은 언어의 문제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기 때문에 AP과목이나 Pre-AP 과목을 충분히 이수할 수 있다. 나는 Pre-Calculus라는 Pre-AP 과목을 들어 우수한 성적을 받았으며, 해당 과목을 듣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진행되었던 수학 경시대회에 참가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수학경시대회를 통해 지역대회에서는 은메달, 주대회에서는 동메달을 따는 등의 성과를 어렵지 않게 올릴 수 있었으며 이는 대입에서 제시할 수 있는 좋은 스펙이 되기도 했다.

 

- 교환학생 기간동안 자신이 가장 잘 했다고 생각되는 점

가장 잘했다고 생각하는 점을 세 가지 들고 싶다. 첫 번째로는 꾸준히 운동을 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고등학교 생활했을 때와는 달리 미국에서는 충분히 일찍 자고 충분히 일찍 일어날 수 있었다. 처음에는 50개만 해도 힘들었던 줄넘기가 매일 하다 보니 500~1,000개 정도 할 수 있는 수준으로 늘게 되었다. 꾸준히 줄넘기를 하다보니 미국에서 기름진 음식을 먹고 살이 찔 것이라는 우려와 달리 다이어트에도 성공해서 우리 집에 와서 살이 빠진 학생은 네가 처음이다라며 호스트 어머니께서 무척 놀라시기도 했다. 매일 운동하는 경험을 통해 한국에 돌아와서 고등학교 시절에 공부할 수 있는 체력을 증진했을 뿐 아니라, 무엇이든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된 계기가 되었다.

두 번째로 잘한 점이라면 Marching Band에 들어간 점이다. 대부분의 미국 고등학교에는 Football Team이 있고, Football Team을 응원하는 치어리더들과 악단(Marching Band)가 존재한다. 나는 중학교 때부터 색소폰을 취미로 불었던 터라 Marching Band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Football Team의 경기를 응원하고자 현지 친구들과 함께 악기를 연습하고 원정을 다니며 자연스럽게 관계를 맺는 계기가 되었다. 생각해보면 취미를 공유하는 것만큼 친구들과 빠르게 친밀감을 형성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 같다. 교환학생으로 지내는 만큼 취미생활을 할 수 있는 요소를 만들어 보는 것은 반드시 고려해볼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잘한 점을 뽑으라면 외국인으로서 조금 더 담대하게 행동했다는 점이다. 일례로 나는 당시에 Junior학년으로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Senior들에게만 참석권이 주어지는 Prom행사(고등학교에서 열리는 일종의 댄스 파티)에 참여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힌 바 있다. 어떻게 그런 용기를 냈는지 모르겠는데 한 여학생에게 Prom에 참석하자고 신청해서 함께 식사도 하고 Prom에 참석해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것이 추억으로 남는다. 한국에서는 남사스러워서 하지 못했을 법한 행동을 외국인이라는 신분을 얻을 때만큼 자신있게 해보는 것도 좋은 경험과 추억이 될 것이라 확신하기에, 담대하게 행동했던 나의 모습을 잘한 점으로 말하고 싶다.

 

4. 교환학생 프로그램 종료 후 한국 학교 복학

- 복학 할 당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점

복학할 당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점은 바로 느려도 확실한 길을 걷자는 것이다. 고등학교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교환학생으로 떠나긴 했지만 미국에서 고등학교 생활을 1년간 했던 것을 인정 받아 2학년 2학기로 복학할 수 있었다. 고등학생 때는 1년이라는 세월이 늦어진다는 것이 무척 크게 느껴져서 2학년 2학기로 복학하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이내 확실한 길을 걸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1학년 2학기로 복학하게 되었다. 내가 미국에서 1년 동안 영어를 배우고 미국의 문화를 습득하는 동안, 한국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은 1년 동안 대입 준비에 몰두하고 있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돌이켜 보면 1년 빨리 가자고 2학년 2학기로 복학했더라면 충분히 적응하지 못한 채 고등학교 생활을 보내면서 대입 준비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 한국학교 적응에 따른 학업 계획

미국 생활을 마치고 6월에 한국에 귀국하고 나서 복학하기 전까지 약 두 달의 시간 동안 재활훈련한다는 마음으로 학업에 임하였다. 고등학교 1학년 모의고사 문제를 풀어보면서 현재 나의 상태가 어떤지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약한 분야에 시간을 많이 투여하면서 복학해서 다시 공부하는 감각을 익혀나갔다. 미국에서 열심히 공부한 덕분에 수학하고 영어는 어려움이 많이 없었지만 국어, 국사, 사회, 과학은 암기한 내용의 대부분을 까먹고 있었기 때문에 개념부터 잡아가도록 노력했었다. 그 결과 복학하고 처음 본 9월 모의고사에서 전교 2등이라는 쾌거를 올릴 수 있었다. 교환학생을 떠나기 전에는 최상위권에 도달하지 못했던 내가 최상위권에 올라가는 첫 단추를 잘 꿰어간 덕분인지, 교환학생을 다녀오고 나서도 한국학교에서의 적응을 어렵지 않게 해나갈 수 있었다.

 

- 한국 학교 복학 후 어려웠던 점 / 어려운점이 있었다면 어떻게 극복했는지?

한국학교에 돌아와서 느꼈던 어려움을 크게 학업적인 면과 학업 외적인 면으로 나눠서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학업적인 면에서는 공부하는 내용이 점차 어려워지면서 스트레스가 심해졌다. 자신있던 영어도 고등학교 2학년 2학기 넘어가면서부터는 읽기 지문의 길이가 늘어나고 단어도 어려워지면서 시간 내에 풀기가 어려워졌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나만의 문제 풀이 방식(1페이지와 8페이지를 동시에 펼쳐두고 상대적으로 쉬운 영어 듣기 시간에 틈틈이 읽기 41~45번 문제를 푸는 방식)을 고안해서 시간 부족 문제를 해결했다. 고등학교 2학년에 올라가게 되면서 접하게 되는 수학의 난이도도 무척 큰 어려움이 되었는데, 개념을 정확하게 학습하는 한편 다양한 문제 유형을 반복적으로 풀면서 고득점을 달성하기 위해 반드시 익혀야 하는 문제 풀이 과정을 학습해나가는 방식으로 어려움을 극복해나갔다.

학업 외적인 면에 있어서는 한국학교 특유의 경쟁의식과 은근한 압박감이 가장 큰 스트레스였었다. 특히 나는 내신시험에 강점을 갖고 있어 내신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받곤 했는데, 시기심을 갖고 나를 깎아내리려는 친구들이 있다는 점에서 스트레스를 받곤 했었다. 이를 대처하기 위해 나의 것을 지키려는 태도를 갖기보다는 나의 것을 공유하고 나눠주는 태도를 견지하고자 노력했다. 친구들이 노트를 빌려달라고 하면 노트를 빌려주고, 모르는 개념을 설명해달라고 하면 성심성의껏 설명하며 그 친구가 이해할 때까지 기다렸다. 당장은 손해보는 일이라 생각이 들지 모르겠지만 다른 친구들에게 필기를 빌려주고 설명하기 위해 수업에서 배운 개념을 체계화하고 구체화했던 것들이 오히려 내가 그 개념을 이해하고 암기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5. 대학진학을 위한 진로 결정

교환학생에서 경험했던 모든 일들이 내가 서울대학교 사회복지학과에 진학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내가 미국에 있을 때만 하더라도 미국 사람들은 웬만큼 아파서는 병원에 가지 않고, 아프면 Wallmart에서 약을 사는 것이 응급처방의 전부였다. 한국에서는 어느 시골마을에 가도 병원이 있는 데에 반해 내가 살던 미국의 마을에서는 그 흔한 내과 하나도 볼 수 없었다. 우리 호스트 부모님께서는 연세가 많으신 할머니를 Nursing home에 맡기고 보호하고 계셨는데, 매월 $2,000 넘는 금액을 지불하셔야 해서 무척 부담스러워 하셨던 기억이 난다. 이러한 모든 일들이 미국에는 국가에서 보장하는 의료보험체계가 충분히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문제의식을 갖고 진로를 결정하게 되었다.

대학 진학을 준비할 당시에는 우리나라의 통일에 대한 관심을 갖고 우리나라가 통일되기 위해 어떤 점을 미리 준비해야 할지 고민을 시작했던 것 같다. 미국에서 경험한 의료보험체계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바탕으로 우리나라가 통일이 된다면 사회보장제도가 어떻게 발전해야 하는가 하는 고민을 안고 서울대학교 사회복지학과에 문을 두드렸다. 특히 직장에 고용되어 있는 임금노동자들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는 연금제도와 의료보험제도가 통일 이후 북한 주민들에게까지 확장되어야 한다면 어떠한 방식을 구상하는 것이 좋을지에 대한 고민이 들었다. 우리 사회의 안전망으로 작동하고 있는 각종 사회보험의 원리와 구조, 그리고 발전방향에 대해 심화적으로 배우고 연구하고 싶어 서울대학교 사회복지학과에 진학하게 되었다.

 

6. 대학 진학에 필요한 준비 과정

- 수시 진학 또는 정시 진학 선택에 따른 준비는 어떻게?

내신시험 준비는 정직하고 우직하게 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싶다. 나는 고등학교 담임선생님께서 내신시험을 대비하기 위해 선생님의 농담까지도 다 받아적은 선배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해주시는 것을 듣고, 그 날부터 수업의 모든 내용을 놓치지 않고 받아적으려고 노력했다. 모든 내용을 놓치지 않고 적으려면 글자를 정상적으로 적기 어려웠던 까닭에 연필을 사용해서 연습장에 필기를 휘갈겨 적었다. 야간 자율학습시간에는 휘갈겨 적은 내용을 과목별 필기노트에 옮겨적으면서 그날 배운 내용을 암기했다. 시험을 볼 때는 필기노트를 암기하는 한편 필기노트의 내용을 구조화하고자 빈 A4 용지에 외운 내용을 쭉 적어내려가면서 얼마나 해당 과목을 확실하게 암기하고 있는지 체크하였다.

고등학교 3학년 2학기 때부터는 진학하고자 대학의 입학전형에 맞춰 입시를 준비했었다. 나의 경우에는 논술과 면접을 보는 전형을 준비했어야 했는데, 학교에서 논술과 면접을 준비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어 사교육의 도움을 받았다. 특히 대학 입시에서 요구하는 논술시험의 경우 구조적인 사고를 요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해당 학교의 기출문제를 다방면으로 풀어보고 첨삭을 받을 것을 권하고 싶다. 면접 역시 유형에 따라 대응 방법이 다를 수 있겠지만, 학생부 전형의 경우 자기소개서에 쓴 문항을 완벽하게 숙지하고 그에 대한 답변을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 서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면접 볼 때에는 교환학생에 참여한 경험에 대한 질문을 받기도 했는데, 교환학생에 다녀왔다는 특이한 경험을 했다는 점이 입시에 장점으로 활용되었던 것이 아닐까 추측한다.

 

- 대학 진학 후 교환학생 참가가 어떤 도움이 되었는지?

대학에 진학하게 되면 영문 텍스트를 바탕으로 수업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아, 교환학생 시기에 영어 교과서를 열심히 읽었던 경험이 무척 큰 도움이 되었다. 또한 기본적으로 영어 듣기와 말하기에서 충분한 역량을 가질 수 있어, 영어로 진행하는 수업을 듣거나 발표를 진행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다. 또한 대학에서 졸업해서 취직하거나 진학할 때도 대부분의 기관에서 영어점수를 요구하는데, 기본적으로 영어 듣기에서 강점을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무척 큰 도움이 되었다. 언어적인 강점을 지닐 수 있다는 것은 대학에 진학하고 나서도 유용한 자산이 된다고 생각한다.

 

7. 후배들에게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추천하고 싶은 이유

위에서 교환학생으로 지내면서 느꼈던 장점을 거론했지만, 미국에서 1년 동안 지낸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점을 먼저 말해주고 싶다.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그 누구도 나의 편이 되어줄 사람이 없는 외국에서 홀로 생활하는 것이 녹록치 않기 때문이다. 나 역시 부모님과 가족들이 그리워서 사진을 보며 눈물을 삭힌 적이 많았고, 가족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는 꿈을 꾸며 향수병으로 마음이 아팠던 기억이 난다. 한국에서는 한 번도 해보지 못했던 집안일도 해야 했고, 호스트 부모님들이 소와 말을 키우는 ranch를 운영하셨는데 드넓은 초원을 다니면서 먹이를 주는 일도 돕곤 했었다. 호스트 부모님의 5살 먹은 손녀딸이 자주 놀러오곤 했는데 육아를 돕는 것도 결코 쉽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일들이 나에게 좋은 자산이 되었다는 점에 대해서는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언어적인 측면으로만 생각한다면 국제학교를 다니거나 해외에 있는 어학원에 등록하는 것이 더 빠르게 배울 수 있는 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언어를 둘러싼 미국의 문화를 직접적으로 체험하고 체화하는 데에는 교환학생 만큼 좋은 기회는 없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만 살았더라면 제 아무리 언어적인 측면을 배운다고 하더라도 위에 적었던 미국의 의료보험에 대한 문제나 미국 공립학교의 생활에 대해 자신있게 이야기할 수는 없었을 것임에 틀림없다.

교환학생을 가는 것이 분명히 큰 도전임에는 틀림없지만 도전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해변에서 찰랑거리는 파도를 보고 두려워 떨기 보다는 망망대해를 향해 돛을 열어 한 걸음 내딛어보라는 조언을 던지며 긴 글을 마무리한다.